memory
장승리 열여각 ...
외야
2008. 12. 7. 15:47
장승리 열여각...
(요즘 표기법은 열녀각이지만 당시의 표기법대로 열여각으로 쓴다)
정확한지는 모르겠으나 아마 이곳도 장승리 일것이다.
이 곳은 예전 양양광업소로 올라가다 보면 길 왼쪽에 있으며...
어렴풋이 생각나는것은 옛날 처음으로 목욕탕이 있었던 부근인것 같다...
그리고 열여각 뒤쪽으로도 집들이 몇채 있었던것 같고
거기에 지금은 하늘나라로 간 친구의 집도 있었던 기억이 난다...
아뭏든...
세월이 그렇게 흘러... 어렸을때의 기억들이 거의 지워지고... 주변 건물들도 낡아 없어지고 있지만
놀랍게도 이 열여각은 오히려 더 깨끗하게 보존 되어간다...
이곳의 위치가 옜날 양양광업소 안에 있어서 그렇게 자주 본 것은 아니었으나 가끔씩 지나칠때 마다...
어릴적엔 귀신과 연결지어지는 무슨 사당같이 생각되어서 가까이 가보지는 않았던것 같다... 이후에
좀 더 큰후에 이곳이 열여각이란 것을 알았지만 그 열녀가 누구인지 까지는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나이탓인가?..... 이런곳에도 이젠 자연스레 관심이 간다....
[정용관의 처 평산신씨 열여각. 2008년 11월 29일]
열녀의 기준은 특별하게 정할 수는 없어서...
남편이 죽은 후 수절하며 평생동안 시부모를 봉양하는 경우,
남편이 죽자 남편을 그리며 같이 따라 죽은 경우,
남편이 위급한 상태에서 남편을 살리고자 대신 죽은 경우,
왜적이 침입하여 자신의 몸을 상하지 않으려고 목숨을 끊는 경우,
남편이 병들었을때 자신의 몸 일부를 희생하며 돌보는 경우,
죽은 남편의 묘앞에서 죽을때 까지 수절하는 경우...등 무조건 남편을 위해
죽어야만 열녀가 되는것 같아...슬프다.
이러한 열여각은 조선시대에 많이 발굴하여 포상하였다고한다...
우리마을... 장승리의 열여각도 조선시대인 1822년에 포상하여 세워진것이며
열녀 평산신씨님을 기리는 것이며 내용은 아래와 같다.....
지금은...
이렇게 신적인 남편의 존재로 인해 목숨을 바쳐 열녀가 되었던 많은 여인들에게 박수를 보내야 하는건지 모르겠으나...
당시의 유교적인 덕목으로 살아가던 조선시대의 모습에서는 훌륭한 일이 아닐 수 없을것 같아...
정용관의 처 평산신씨님께 기도를 드린다...
(요즘 표기법은 열녀각이지만 당시의 표기법대로 열여각으로 쓴다)
정확한지는 모르겠으나 아마 이곳도 장승리 일것이다.
이 곳은 예전 양양광업소로 올라가다 보면 길 왼쪽에 있으며...
어렴풋이 생각나는것은 옛날 처음으로 목욕탕이 있었던 부근인것 같다...
그리고 열여각 뒤쪽으로도 집들이 몇채 있었던것 같고
거기에 지금은 하늘나라로 간 친구의 집도 있었던 기억이 난다...
아뭏든...
세월이 그렇게 흘러... 어렸을때의 기억들이 거의 지워지고... 주변 건물들도 낡아 없어지고 있지만
놀랍게도 이 열여각은 오히려 더 깨끗하게 보존 되어간다...
이곳의 위치가 옜날 양양광업소 안에 있어서 그렇게 자주 본 것은 아니었으나 가끔씩 지나칠때 마다...
어릴적엔 귀신과 연결지어지는 무슨 사당같이 생각되어서 가까이 가보지는 않았던것 같다... 이후에
좀 더 큰후에 이곳이 열여각이란 것을 알았지만 그 열녀가 누구인지 까지는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나이탓인가?..... 이런곳에도 이젠 자연스레 관심이 간다....
열녀의 기준은 특별하게 정할 수는 없어서...
남편이 죽은 후 수절하며 평생동안 시부모를 봉양하는 경우,
남편이 죽자 남편을 그리며 같이 따라 죽은 경우,
남편이 위급한 상태에서 남편을 살리고자 대신 죽은 경우,
왜적이 침입하여 자신의 몸을 상하지 않으려고 목숨을 끊는 경우,
남편이 병들었을때 자신의 몸 일부를 희생하며 돌보는 경우,
죽은 남편의 묘앞에서 죽을때 까지 수절하는 경우...등 무조건 남편을 위해
죽어야만 열녀가 되는것 같아...슬프다.
이러한 열여각은 조선시대에 많이 발굴하여 포상하였다고한다...
우리마을... 장승리의 열여각도 조선시대인 1822년에 포상하여 세워진것이며
열녀 평산신씨님을 기리는 것이며 내용은 아래와 같다.....
지금은...
이렇게 신적인 남편의 존재로 인해 목숨을 바쳐 열녀가 되었던 많은 여인들에게 박수를 보내야 하는건지 모르겠으나...
당시의 유교적인 덕목으로 살아가던 조선시대의 모습에서는 훌륭한 일이 아닐 수 없을것 같아...
정용관의 처 평산신씨님께 기도를 드린다...